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차를 돌려 동해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15분 남짓 내려오면 거대한 자연 석호와 동해안의 푸른 해변이 맞닿은 화진포를 마주하게 된다.
아빠가 유독 아끼고 좋아하셨던 풍경.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그 기억의 궤적을 짚어가다 보니, 문득 화진포 호숫가 언덕마다 자리한 근현대사의 상흔들—이승만, 김일성, 이기붕 별장과 셔우드 홀 문화공간—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했다.
화진포는 오랜 세월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으로 묶여 있었던 덕에 오염되지 않은 해송림과 생태계를 보존해 왔다.
1999년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정비되어 일반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동해안 최북단에서 마주하는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의 주요 정보와 관람 동선을 기록해 둔다.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기본 이용 정보
- 정식 명칭: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셔우드 홀 문화공간, 이승만 별장 및 화진포 기념관)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현내면 및 거진읍 화진포 일대 (이승만별장: 강원 고성군 현내면 이승만별장길 33)
- 운영 시간: 매일 09:00 ~ 17:50 (매표 마감 17:00 / 동절기는 30분 단축 운영)
- 입장 요금: 성인 4,000원 / 청소년 및 어린이 3,000원
- 이용 안내: 김일성 별장 입구, 이승만 별장 입구, 셔우드 홀 문화공간 매표소 어디서나 발권 가능하며, 발권한 통합 관람권 1장으로 4개 전시 공간을 모두 입장할 수 있다. 구역 이동 시 검표가 이루어지므로 티켓은 관람 내내 소지해야 한다.
- 주차 안내: 화진포 해수욕장 공영주차장 및 이승만 별장 전용 주차장 무료 이용 가능
1. 해안 절벽 위의 석조 성채, 김일성 별장(화진포의 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진포 해변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오른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배려한 완만한 무장애 덱 경사로가 나란히 놓여 있어 걷기에 무리가 없다. (별장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해변 주차장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는 편이 낫다.)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린 시절 김정일이 앉아 사진을 찍었던 자리'라는 안내 팻말이 눈에 띈다. 이 건물의 본래 명칭은 '화진포의 성'이다. 1938년 일제강점기 시절, 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 부부가 독일인 건축가 베버에게 설계를 의뢰해 세운 외국인 휴양 별장이었다. 광복 이후 38선 이북을 소련 군정이 관할하면서 북한 고위 간부들의 휴양시설로 편입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김일성 일가가 여름 휴양지로 활용하며 오늘날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05년 복원 공사를 거친 외형이다.
- 1층: 원래 건립자인 셔우드 홀 가족의 의료 선교 역사와 별장의 내력 기록
- 2층: 1948년 전후 당시 김일성 일가가 머물렀던 집무실과 침실을 재현한 전시 공간
- 3층: 화진포 해수욕장 백사장과 동해 바다가 막힘없이 펼쳐지는 옥상 전망대
2층 침실 창가 너머로 화진포 해변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좌우로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과 코발트빛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격동의 시대 속 최고 권력자들이 왜 이곳을 휴양처로 택했는지 그 입지적 가치가 고스란히 체감된다.
2. 해송 숲 사이에 숨겨진 소박한 관사,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에서 해송 숲길을 따라 솔향을 맡으며 5분 남짓 걸어 내려오면 소담한 단층 슬레이트 건물 한 채를 만나게 된다. 제3대 국회의장이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이곳 역시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 휴양소로 출발해 해방 이후 북한 간부 숙소로 쓰이다가,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관할이 되며 권력의 손을 탔다. 1950년대 후반 정권의 실세였던 이기붕 일가의 권세에 비하면 외관이나 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작고 소박하다. 내부에는 낡은 응접세트와 거실 집기, 집무 서재가 1950~60년대 당시의 생활상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관람 동선은 2~3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숲속에 드리운 고요함이 깊은 생각의 여백을 만들어준다.
3. 조선의 결핵 퇴치와 크리스마스 씰의 발원지, 셔우드 홀 문화공간
이기붕 별장 인근에 자리한 '셔우드 홀 문화공간'은 근대 의료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 가족을 기리는 복합 기념 공간이다.
한성(서울)에서 의료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셔우드 홀은 일제강점기 조선 땅에 만연했던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32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발행하여 치료 기금을 모았던 장본인이자,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화진포의 성'을 처음 구상하고 지어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전시관 내부에는 셔우드 홀 가문의 헌신적인 의료 활동 기록과 초창기 크리스마스 씰 실물, 당시의 의료 기구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면서도 생을 마감한 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했던 그의 유언대로, 현재 그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권력 투쟁의 역사 이면에 묵묵히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외국인 의사의 헌신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4. 석호를 굽어보는 고요한 언덕, 이승만 별장과 대한민국 건국 화진포 기념관
셔우드 홀 문화공간을 나와 차로 약 2분(화진포 둘레길을 따라 도보 이동 시 10~15분 소요) 이동하면 반대편 언덕 위에 자리한 이승만 대통령 별장에 닿는다.
입구 매표소에서 통합 입장권을 확인받고 돌계단을 오르면 숲속에 호젓하게 자리한 단층 별장이 나타난다. 1954년에 신축된 이 별장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하야하면서 폐허로 방치되었으나, 육군 관사 등으로 쓰이다가 1997년에 현 위치로 복원되었다. 내부에는 생전 사용하던 소박한 가구들과 침실, 서재, 그리고 프란체스카 여사의 손때 묻은 유품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별장 뒤편 언덕 계단을 2분가량 더 오르면 산등성이 가장 높은 자리에 이승만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이 언덕 정상이 1954년 최초로 별장이 서 있었던 원래 터다.
깔끔하게 정비된 기념관은 독립운동 시기부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재임, 하야 후 하와이에서의 말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전 생애와 외교 기록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검소했던 일상 유품과 영상 방문록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기념관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화진포 호수의 은빛 수면은 이번 여정 중 가장 평온하고 서정적인 풍광을 선사했다.
화진포 호수 전설을 곱씹으며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목, 화진포 설화 조형물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부자 '이화진'이라는 자가 구두쇠에 성품이 고약하여, 시주를 청하는 스님에게 쌀 대신 쇠똥을 퍼주었다고 한다. 그 패륜에 하늘이 노해 집과 전답이 하룻밤 새 물속에 잠겨 거대한 호수가 되었고, 착한 며느리가 그 모습을 보며 울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 호수의 이름 '화진포(花津浦)'는 그렇게 구두쇠 이화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광복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거치는 동안 남과 북의 최고 권력자들이 서로 번갈아 머물며 주인이 바뀌었던 화진포의 별장들. 그러나 인간들이 긋고 지우던 이념의 경계와 무관하게, 호숫가를 감싸는 솔숲의 청량한 향과 잔잔한 호수 물결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극적인 즐길 거리보다는 고요한 산책길 위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묵직한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은 긴 사색의 시간을 내어주는 믿음직한 쉼표가 될 것이다.
태그: #고성화진포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김일성별장 #이승만별장 #이기붕별장 #셔우드홀문화공간 #고성가볼만한곳 #강원도고성여행 #화진포해수욕장 #고성역사여행 #화진포둘레길 #고성여행코스
'여행 그리고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성 통일전망대 출입신고 절차와 해금강 식당, 금강산 자락을 마주한 최북단 여정의 기록 (0) | 2026.10.20 |
|---|---|
| 20년 단골이 기록한 속초 김영애할머니순두부 본점, 아침 식사와 비지찌개가 특별한 이유 (0) | 2026.10.19 |
| 고2 아들 시험 끝, 1박 2일 고성 힐링 여행기 — 금강산 화암사 신선대 등산 코스와 주차 팁 (0) | 2026.10.19 |
| 수영인이 뒤늦게 러닝에 중독된 이유: 시간 대비 에너지 소모량 체감과 디즈니런 레이스팩 언박싱 (0) | 2026.10.15 |
| [강화도 마니산 등산코스] 단군로 소요시간·주차 정보 총정리|중간고사 아들을 위한 주말 산행 일기 (1) | 2026.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