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도 해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머물다 보니 어느덧 하늘빛이 짙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실 낮에 순두부며 이것저것 든든하게 챙겨 먹은 탓에 뱃속이 크게 고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해까지 와서 해질녘 붉게 물드는 바다를 곁에 두고 갓 뜬 싱싱한 회 한 점을 마주하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영 서운했다.
서둘러 예약해 둔 숙소에 들러 짐만 던져놓듯 체크인을 마치고, 운전대 대신 편안하게 술 한잔 곁들이기 위해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오늘 저녁 목적지는 속초와 고성 경계선 바닷가에 자리한 바다정원 어시장이다.
나와 남편은 전형적인 '한 우물 파기' 식습관을 지녔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한 번 발견하면 모험을 하기보다 십수 년이고 그곳만 다시 찾는 고집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랜 관성을 깨고 조금 결이 다른 선택을 내려보기로 했다.
바로 불필요하게 가짓수만 채우는 '스끼다시'가 없는 실속형 활어 센터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보통 관광지 횟집을 가면 손도 안 대는 콘치즈나 마요네즈 샐러드 같은 구색 맞추기용 반찬들로 배를 채우게 되어 정작 메인 활어의 참맛을 놓치기 일쑤다.
반면 바다정원 어시장은 수산물 유통 센터처럼 메인인 활어회와 대게에 집중하고, 그 외 먹고 싶은 단품 안주거리를 직접 골라 즐길 수 있다는 구조라 구미가 당겼다.
새로운 시스템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모듬회(대)와 대게 수율: 냉정한 본질 체크
자리를 잡고 모듬회 대(大)자와 대게를 주문했다. 창밖으로는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동해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져 운치를 더했다.
먼저 나온 모듬회 대자. 결론부터 적자면 회의 '양'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접시에 깔린 회의 볼륨이 넉넉지 않았다.
큼직한 대형 어종을 썰어낸 묵직한 두께감이라기보다는, 크기가 다소 작은 물고기들을 손질해 올린 듯한 인상을 받았다.
회 본연의 쫄깃한 식감은 살아있었으나, 회 킬러인 우리 가족 기준에서는 성인 몇 점 집어먹으면 바닥을 보일 양이라 첫 젓가락질부터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반면 뒤이어 나온 대게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찜기에서 갓 나와 김을 뿜는 다리를 갈라보니 살이 제법 꽉 차 있었다.
체감상 수율은 약 80% 안팎. 껍질 안쪽에 빈틈이 많지 않고 달큰한 게살이 옹골차게 차올라 있어 쏙쏙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장의 녹진한 풍미도 신선해서 회에서 살짝 비었던 만족감을 대게가 훌륭하게 채워주었다.




사이드 메뉴 도장깨기: 해물전의 발견과 최종 정산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며 들어왔건만, 한창 클 나이의 먹성 좋은 청소년들과 함께 앉아있으니 주문서는 쉴 틈 없이 늘어났다.
- 해물라면: 특별한 비법 육수라기보다는 우리가 익히 아는 무난한 인스턴트 라면 베이스에 해산물이 가볍게 들어간 정도. 딱 입가심용 국물 안주(soso) 수준이다.
- 게딱지 볶음밥: 대게 내장의 고소함과 김가루, 참기름이 어우러진, 누구나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그 클래식하고 맛있는 정석의 맛이다. 실패가 없는 마무리 탄수화물.
- 해물전(강력 추천): 이날 테이블의 숨은 주인공은 단연 해물전이었다. 일반 횟집의 기름에 절어 눅눅한 부침개가 아니라, 기름 온도를 바짝 올려 거의 '튀김'처럼 바삭바삭하게 부쳐냈다. 겉은 파작하게 부서지고 속은 촉촉한데, 해물도 섭섭지 않게 씹혀서 온 가족이 감탄하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결국 모듬회 양의 아쉬움을 달래려 이것저것 단품 안주를 추가 주문해 먹다 보니, 계산서에 찍힌 최종 금액은 스끼다시가 코스로 화려하게 깔리는 일반 횟집의 결제 금액과 거의 같아져 버렸다.
스끼다시의 거품을 빼고 원하는 메뉴만 골라 먹겠다는 취지는 신선하고 좋았다.
하지만 회 사랑이 유독 유별나고 푸짐한 양을 원하는 우리 집 청소년들의 식성을 감안한다면, 다음 동해 여행에서는 그냥 풍성한 곁들임 찬과 푸짐한 회가 한 상 부러지게 차려지는 전통적인 횟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탁 트인 밤바다를 곁에 두고, 바삭한 해물전에 달큰한 대게살을 발라 나누며 웃었던 고성의 저녁은 그 자체로 유쾌한 기록으로 남았다.
📌 고성 바다정원 어시장 핵심 방문 정보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토성면 버리깨길 23 (바다정원 단지 내)
- 주문 방식: 모듬회, 대게 등 메인 수산물 중심 결제 후 사이드 메뉴(해물전, 라면, 볶음밥 등)를 취향대로 추가하는 단품 시스템
- 특징 요약:
- 기본 곁들임 찬(스끼다시)이 거의 없는 대신 메인 해산물과 안주류에 집중
- 모듬회는 어종 크기와 양 측면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대게 수율(약 80%)과 튀김 스타일의 해물전 완성도는 매우 훌륭함
- 주차 및 접근성: 바다정원 전용 대형 주차장 구비, 바닷가 바로 앞 위치로 일몰 및 오션뷰 조망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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